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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가는 여정 중에 만난 사람, / 차진엽_안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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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화와 예술 작성일20-01-23 18:17 조회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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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거죠

나를 찾아가는 여정 중에 만난 사람, / 차진엽_안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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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예술센터 ⓒFotobee_양동민

1. 당신은 누구십니까?
이 질문을 받고 정말 제가 누구인지 생각해보았어요. 저는 차진엽인데 예술을 하는 사람이고, 예술을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나란 존재에 대한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기 때문이에요. 결국, 내가 알고 있는 차진엽은 차진엽이 맞느냐를 찾아가는 사람인 거죠. 나를 새롭게 만들어나가는 미래지향적인 작업이라기보다는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서 내가 누구였나를 찾아가는 중간 작업이에요.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 안에서 나를 발견하는 게 재미있어서 작업을 계속하는 것 같아요. 저는 작품을 만들기보다는 작품을 만드는 과정 안에서 살아가고 싶어요. 현대 사회가 결과 중심주의에 길들어져서 과정은 결과에 도달하기 위한 절차로 치부되곤 했는데, 지금은 어떤 과정을 거칠 것인지가 더 중시되기 때문이죠. 그리고 과정 안에서 이걸 왜 하는 것인지를 발견해나가다 보면 결과는 자연스레 도출돼요.
많은 아티스트는 작업을 위해 자신의 사적인 삶을 헌신하고 희생하잖아요. 그게 행복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일상과 삶이 망가지기도 해요. 언젠가 그런 나를 보며, 작업과 삶이 수평적으로 가야지 하나의 방향으로 가는 희생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작업이 일상과 맞닿아있고, 일상에서 무언가를 계속하고 있으려면 그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해 봤어요. 그래서 작업 과정이 중요하고 일상에서 무언가를 지속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 이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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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IN, 사진 제공 ⓒ차진엽

2. 당신에게 이곳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극장은 제게 애증의 공간입니다. (웃음) 전엔, 답답하고 무언가 옥죄는 곳이라고 느끼곤 했어요. 그래서 한동안 극장 밖에서 장소 특정적인 퍼포먼스를 많이 했지요. 그래도 그렇게 밖에서 작업하다 보면 또 극장에 다시 돌아가고 싶어져요. 극장이 주는 전율과 짜릿한 느낌이 있거든요. 또, 관객으로 극장에 있을 땐 객석에서 온전히 저 혼자만의 세계에 빠지는 경험을 해요. 공연을 보면서 동시에 스스로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상상의 나래를 무대에 펼쳐 놓기도 합니다. 극장이 가지는 집중력과 숨 막히는 느낌, 그 상황만큼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순간이 없는 것 같아서 그럴 때만큼은 극장이 좋아요.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극장에 귀속되기 싫었고 벗어나고 싶었던 시기가 있었어요. 물리적으로 극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기보다는 그 사회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거죠. 극장은 설렘을 주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정말 싫고 피하고 싶기도 해요. 그래서 아이러니한 공간이에요. 그런데 극장은 결국 공간이며, 항상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사람은 계속 오고 가고, 있다가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데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나 싶어요. 그래서 피할 필요도 없고 적당히, 그 곳에 있을 때는 그 공간의 일부가 되었다가, 극장에서 나오면 또 다른 곳의 일부가 되는 거죠. 저는 결국 하나니까 어딘가에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는 거죠. 그래서 부유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부유하는 삶을 산다고 하면 어디에도 미련이 없을 거잖아요. 부유하다가 어딘가에 자연스럽게 정착할 수는 있는데 정착을 의도하는 순간 사심이 생기면서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극장은 부유하다가 가끔 머무르고 싶은 곳, 그래도 가끔 설레고 기운이 솟는 곳이에요. 어쨌든 조명이 켜진 무대에 서는 것만큼 즐거운 순간이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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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IN, 사진 제공 ⓒ차진엽

3. 이곳에서 춤은 어떻게 발견되나요?
문득 드는 발상이나 영감, 머리에 있는 이미지나 잔상들이 일상 중에 떠오를 때가 있어요. 그럴 때마다 생각나는 것을 메모하고, 핸드폰에 음성을 녹음하는 등 생각의 파편들을 계속 수집하잖아요. 무대에 올라가고 공연이 시작되면 그런 파편들이 정리되는 것 같아요. 하나의 프로시니엄 무대 안에 파편들이 맞춰지죠. 그리고 엉뚱하게 발견되었던 여러 발상이 있잖아요. 꿈이든 일상이든지 무대라는 공간 안에서 어우러져 어떠한 이미지를 가져올 때가 있어요.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상상이죠. 원래는 공연을 앞두고는 제 작품에 집중해야 하니까 공연을 보러가지 않곤 했는데, 이제는 일부러 공연 일주일 전에 공연을 보러 가곤 해요. 다른 공연을 보면서 그 무대에 제 작품을 얹혀놓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죠. 신작 초연을 올리기 전에 문득 자신을 의심할 때가 있잖아요. 아니면, 순간순간 자신이 만드는 장면이 불확실할 때 공연장에 가서 그걸 풀어보면서 관객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상상해 봐요. 공연장 객석에서 제 작품에 잠기다 보면 꿈같은 상상이 펼쳐지고 무의식에 있던 생각들이 발현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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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곳에서 춤은 어떤 모양인가요?
작업을 하다 보면 굉장히 허무할 때가 있어요. 많은 것을 상상했는데 연습실에 가니 현실인 거죠.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난관에 부딪힐 때가 많아요. 그래서 제가 무대에서 상상하는 모습은 시간도 없고 공간도 없는 것 같아요. 시공간을 초월하는 거죠. 그런데 극장이라는 공간도 흘러가는 시간에 그냥 존재하는 거잖아요. 춤을 앞으로 놓을지 뒤로 놓을지에 따라서 시간과 공간을 갖게 되는 거죠. 그래서 극장에서의 춤은 타임머신처럼 과거로 가기도 하고 현재로 가기도 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떠다닐 수도 있어요.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제가 수피 댄스를 경험했던 적이 있어요. 한 댄서가 동작을 설명하면서 손목에 시선을 두고 몸에 힘을 빼고 돌면 된다고 “Concentration is being in the moment”라고 말했거든요. ‘집중이란 그 순간에 있는 거야.’ 그 말을 생각하며 돌다 보니까 어느새 20분이 넘게 돈 거예요. 저를 보면서 다른 댄서분들도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모두 돌기 시작했어요. 그 경험을 통해 순간에 존재하는 것, 머무르는 것이 큰 힘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순간에 집중하고 오로지 그것만 생각하다 보니 머리가 맑아지면서 제 한계치, 가능성을 넘어서는 거죠.
그래서 무대에서 이걸 주제로 공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렇다고 마냥 즉흥을 할 수는 없고, 집중하고 순간에 존재하며 어떤 형태로 갈지 모르는 공연을 해보고 싶은데, 그것이 무엇일까 궁금한 거죠. 그곳에서 춤이 어떨 거라고 실질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기보다는, 실험해보고 싶기에 제가 어디까지 해볼 수 있을지 숙제로 남아있는 거 같아요. 여러 개로 열린 결과에 대한 가능성을 흥미로워하는 거죠.
김아타 사진작가의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사라진다>를 보면 결국 그레이로 형체가 사라지잖아요. 잔향들로 남고, 결국 형체가 사라지죠. 제가 스스로 실험하고 싶다는 게 바로 그거 같아요. 명확히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 무수하게 그런 움직임을 해보고 싶은 것 같아요. 너무 뜬구름 같은 말이긴 한데 굳이 말로 표현을 하자면 그렇죠.
몸을 더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테크놀로지가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몸을 안 쓰거든요. 편하고 편리하게 살기 위해 기계를 구입하고는, 건강을 위해 돈을 내고 운동을 하러 다니죠. 그냥 계단으로 걸어 다니고 일상생활에서 운동하면 되는 건데 눈으로만 보고 앉아있는 거예요. 이렇게 기술이 발달하면서 몸은 퇴화하고 감각이 죽기 때문에 춤이 더 중요해지는 것 같아요. 춤에는 대체 불가능한 어떤 것이 있죠. 그래서 관객들이 객석에서 바라만 보는 것이 아닌 몸의 감각이 깨어나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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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및 정리_김연임_웹진<춤:in> 편집장

차진엽_안무가 차진엽은 안무가이며 무용수이다. 2012년 Collective A를 창단하여 활동 중이다. 현대무용을 기반으로 몸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에 관심을 가지며, 그것을 연결짓기 위한 탐구를 하고 있다. 공간을 발굴하고 그곳에 몸을 담으며 다른 여러장르와의 충돌을 통해 확장해 나가고자 한다. 소소하고 아주 작은 작업부터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안무감독으로서 스펙타클한 작업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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