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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비 내리다-보물 제1270호 영천 은해사 괘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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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화와예술 작성일20-04-03 13:29 조회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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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비 내리다-보물 제1270호 영천 은해사 괘불

국립중앙박물관 2020년 괘불전
국립중앙박물관은 2020년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여 ‘꽃비 내리다-영천 은해사 괘불’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는 바다처럼 겹겹이 은빛 안개로 아름다운 사찰, 영천 은해사銀海寺의 괘불掛佛을 소개한다.
○ 전시기간: 2020. 4. 1.(수) ~ 2020. 10. 11.(일)
※ 전시기간은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으며, 4월 6일 이후 누리집에서 은해사 괘불 영상을 만나볼 수 있다.
○ 전시장소: 서화관 불교회화실
○ 전시품: 은해사 괘불탱(보물 제1270호), 영천 은해사 염불왕생첩경도(보물 제1857호, 8월 23일까지 전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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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기운이 감돌던 1750년 4월, 팔공산 동쪽 기슭에 자리한 은해사에서 야외 의식에 거는 대형 불화인 괘불이 완성되었다. 감춰진 11미터의 화면이 펼쳐지는 순간, 발 디딜 틈 없이 모인 대중들은 화사한 꽃비 속에 홀로 자리한 부처와 마주하게 되었다. 이때 사람들이 마주한 부처는 누구였을까? 괘불에 그려진 홀로 서 있는 여래는 영취산靈鷲山에서 가르침을 전한 석가모니불이었겠죠. 그러나 화려한 깃털로 장식된 새들과 화면을 가득 채운 꽃은 즐거움만 가득한 곳, 아미타불의 극락정토極樂淨土를 연상시킨다. 괘불에 그려진 꽃은 석가모니불의 가르침을 찬탄하며 뿌려진 청정한 공양처럼 보이기도 하고, 아미타불의 극락 하늘에서 내린다는 꽃비 같기도 하다.
은해사 괘불이 처음 펼쳐진 그날부터 270년이 지난 2020년 4월, 괘불에 담긴 이야기가 여러분에게 전해진다. 극락정토를 다스리는 아미타불과 극락의 찬란한 모습을 그린 <염불왕생첩경도 念佛往生捷徑圖>도 8월 23일까지 함께 선보인다. 열다섯 번째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찾아온 괘불을 바라보며 대형 화폭에 흩뿌려지는 꽃비에 흠뻑 취하고, 아미타불의 신앙을 깊이 새기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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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해사 괘불탱(銀海寺 掛佛幀, 보물 제1270호)은 거대한 화면에 불을 단독으로 그린 형식으로 비단바탕에 채색되었다.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이 열릴 때 법당 앞 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기 위해 만든 대형 불교그림이다.
이 괘불의 불(佛) 좌우로 대칭되게 장식을 넣어 자칫 단조로워지기 쉬운 화면을 조화롭게 나타내었다. 녹색의 머리광배에 붉은색의 옷을 입고 있으며, 둥근 얼굴에는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어깨선 또한 둥글게 처리되어 전체적으로 원만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나타낸다. 화면 윗부분의 양쪽에는 새와 덮개 장식이 있고 중앙부의 양쪽으로는 모란이 배치되어 있어 불세계의 평화스러움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황토바탕에 붉은색과 녹색이 주로 사용되었으며 필치가 매우 정밀하면서도 세련되어 활기찬 인상을 준다.
영조 26년(1750)에 제작된 이 괘불은 연꽃이 활짝 피어난 연못으로부터 천상세계로의 상승을 나타낸 상징적인 화면구성을 하고 있으며 원만한 형태, 세련된 필선, 적절한 색의 조화 등이 매우 돋보이는 18세기 불화 중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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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은해사 염불왕생첩경도(永川 銀海寺 念佛往生捷徑圖, 보물 제1857호)는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중생들을 반야용선(般若龍船)에 태우고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장면과 이를 맞이하는 아미타불 일행, 극락연지(極樂蓮池)에서 연화화생(蓮花化生)하는 왕생자, 보수(寶樹)와 극락조(極樂鳥) 등 극락의 장엄한 모습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한 염불왕생첩경도(念佛往生捷徑圖)이다.
원래 은해사 심검당에 구장(舊藏)되었던 것으로 도난 되었다가 최근 회수되었는데, 현재 화기는 남아 있지 않지만 도난 이전 조사 시에 건륭乾隆)15년이라는 연대가 남아 있던 것이 확인되어 1750년도에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염불왕생첩경도는「觀無量壽經(관무량수경)」에 기록된 극락왕생의 장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관상(觀想)을 통한 막연한 극락왕생이 반야용선을 타고 극락으로 가는 실현 가능한 극락왕생을 염원하던 중생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조선후기에는 극락왕생의 모습을 직접 그린 불화가 약 20여 점 정도 남아 있는데, 이 작품은 현존하는 조선후기 극락왕생도 중 가장 이른 예라 할 수 있다전체적으로 색이 바래서 어두운 편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채색이 잘 남아 있으며 보존상태도 매우 양호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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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永川 銀海寺 居祖庵 靈山殿, 국보 제14호)은 돌계단을 오르는 비교적 높은 기단 위에 소박하고 간결하게 지은 영산전은 거조암의 중심 건물이다. 고려 우왕 원년(1375)에 처음 지었으며, 석가모니불상과 526분의 석조나한상을 모시고 있다.
은해사는 통일신라 헌덕왕 1년(809) 혜철국사가 지은 절로 처음에는 해안사라 하였다고 하며 여러 차례 있었던 화재로 많은 건물을 다시 지었는데, 지금 있는 건물들의 대부분은 근래에 세운 것들이다. 거조사는 은해사 보다 먼저 지었지만, 근래에 와서 은해사에 속하는 암자가 되어 거조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영산전(靈山殿)은 앞면 7칸·옆면 3칸 크기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보았을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를 기둥 위부분에만 설치한 주심포 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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